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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놀이터/인도(India)

무굴 제국의 왕들 (후마윤, 악바르, 샤자한, 아우랑제브)

by 돼지왕 왕돼지 2013.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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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마윤 ( Humayun ) - 제 2대

- 인도 무굴제국의 제 2대 황제
 

이미지 출처 : http://ko.wikipedia.org/wiki/%ED%9B%84%EB%A7%88%EC%9C%A4


 

- 초대 황제 바부르의 아들 페르시아 문화를 좋아하는 인물이었다.
 

- 종종 동생들을 옹립해서 독립을 꾀하는 귀족들을 통솔하는 힘이 결여되어, 자신이 정복한 구자라트, 벵골 등을 잃었다. 
 

- 차우사 및 카나우지 전투에서 셰르 샤에게 대패하여(1540) 북서 인도를 상실한 후 페르시아로 도망함으로써 약 15년간 무굴제국은 중절되었다.
 

- 셰르 샤가 죽은 뒤의 수르왕조의 내분을 틈타 1555년 델리를 수복하였으나 6개월 후 사고로 죽었다.


FYI) 옹립 : 임금으로 받을어 모심.

출처 : 네이버 지식 백과 




악바르 대제 ( Akbar, 1542~1605 ) - 제 3대



- 무굴제국의 기틀을 잡은 3대 황제.

- 정복 전쟁으로 제국을 확장시킨 것은 물론, 종교적 관용을 실천하고 문예를 장려하며 제국 통합을 위한 새로운 제도 마련.

- 악바르 대제( Akbar the Great ) 로도 일컬어진다. 악바르는 위대하다라는 뜻.

- 악바르는 13살 나이에 즉위. 즉위하자마자 수르족이 침공, 후마윤의 친구이자 악바르의 섭정 바이람칸이 수르족과 결전을 벌여 장군을 사로잡고 승리를 거둠. 이후 4년 동안 바이람칸은 영토를 넓히며 무굴제국의 실권자로 활약.

- 18세가 되면서 악바르는 바이람칸을 숙청.

- 정복전쟁으로 말와( 인도 서부 말와 고원지대 ), 라지푸트, 구자라트( 인도 서부 ), 벵골 지방( 인도 북동부 ), 카슈미르( 인도 북서부 ), 신드(인더스 강 하류 ), 칸다하르( 아프가니스탄 남부 ) 를 정복.

- 정복전쟁 당시 복종하는 부족과는 혼인동맹을 체결하고, 반항하는 부족은 학살.

- 모든 종교를 포섭 인정.


- 말년에는 원정을 나간 사이 아들 살림이 반란을 일으키고, 제압은 하지만, 후계를 확실히 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살림이 제 4대 황제 자항기르가 된다.


FYI) 섭정 : 군주국가에서 국왕이 어려서 즉위하거나 병 또는 그 밖의 사정이 생겼을 때 국왕을 대신해서 국가의 통치권을 맡아 나라를 다스리는 일 또는 그 사람.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자항 기르

- 인도 무굴제국의 제 4대 황제.

- 비(非)이슬람교도에 대한 인두세를 폐지, 많은 종교에 대해 관대. 문학 미술 등을 보호해 문화의 꽃을 피웠다.

- 말년에는 아편을 애음하고 왕비 누르자한의 전횡을 허용하는 등 무굴황실의 부패를 초래


FYI) 인두세 (poll tax) : 일정 연령 이상의 주민 한 사람당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세금.

FYI) 권횡 : 권력을 혼자 쥐고 제 마음대로 함

출처 : 네이버 지식 백과 




샤자 한 ( Shah Jahan, 1592~1666 ) - 제 4대


- 무굴제국의 안정과 번영을 이룬 제 5대 황제4대 황제 자항기르의 셋째 아들. 라호르에서 태어났다.
- 샤자 한이 지배할 때, 무굴제국의 전성기. 문운( 학문, 문화, 예술 ) 이 최고조에 달했다. 

- 무굴제국은 전공을 세우고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황자가 황위를 차지하는 방식.

- 자항 기르의 첫째 아들 쿠스라우는 반란을 일으켰다가 눈을 멀게 하는 벌을 받았고, 둘째 아들 바르비즈는 병약한데다 알코올 중독자였다. 셋째 아들은 샤 자한( 용맹한 왕이란 뜻 ), 넷째 아들은 샤야르.

- 골콘다와 비자푸르를 굴복. 데칸고원 남부에까지 영토 확장

- 궁정의 낭비과 귀족들의 사치로 왕조의 기강이 점차 문란.

- 그의 애비 뭄타즈 마할( 황궁의 보석이란 뜻 )의 죽음을 애도하여 타즈마할 건설, 아그라의 성 확장, 델리 성(붉은 성) 건설, 대 모스크 자마 마스지드, 진주 모스크( 모티 마스지드 ), 와지르 칸 모스크, 샬라마르 정원, 자항기르의 영묘, 타타의 샤 자한 모스크 등의 건축물을 지음. 그의 건축물 상당수가 세계문화유산.

- 뭄타즈 마할은 샤 자한의 애정을 독차지했고, 정치적 야심을 털끝만치도 품지 않은 완벽한 아내였다는 평가가 전해진다. 그녀는 14번째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났다. 그녀 사 후 샤 자한은 식음을 전폐하고 비통에 잠기기를 수십 일. 그의 머리카락이 하얗게 바뀔 정도였다고 한다.

- 샤 자한의 말년, 자식들의 왕위 계승 권력 다툼. 아우랑제브가 권력을 잡고, 아버지 샤 자한을 아그라 요새의 탑에 감금. 아우랑제브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떄까지 한번도 아버지를 만나지 않았다.

뭄타즈 마할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아우랑 제브 - 제 5대



- 인도 무굴제국의 제 6대 황제, 제 5대 샤 자한의 셋째 아들.

- 1658년 부왕의 병을 계기로 형제간에 제위 계속 문제로 싸움을 벌여 승리하고 이듬해 부왕을 유폐시키고 제위에 올랐다.

- 관료들의 규율은 문란, 세금의 중과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반란, 라지푸트족의 제후들이 그를 배반. 남쪽의 마라타족은 25년에 걸친 황제의 친정에도 불구하고 게릴라를 계속하여 무굴 제국의 정벌군을 격파. 혼미한 정세에서 아우랑제브가 죽자 무굴제국은 급속히 붕괴.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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