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는 어떻게 거세를 했을까? 어떻게 오줌(소변)을 봤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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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는 언제부터 등장했는가?
고려시대 때까지만 해도 내시는 고자가 아니었고 거세도 하지 않았으며,
왕을 가까이서 모시던 엘리트 문관이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비서의 역할에 가깝다.
우리가 소위 내시라고 말하는 거세를 하는 관직으로는 따로 환관이 있었고,
하는 일은 조선시대의 내시와 같다.
내시의 거세는 조선시대때부터 등장했으며,
역할 역시 왕과 왕의 가족들을 위해 허드렛일을 하는 환관이었다.
사실 내시의 거세가 조선시대에 등장했다는 표현보다는,
고려시대의 내시의 역할이 사라지고, 환관이 내시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이
더 바른 표현으로 보인다.
내시( 고려시대 환관 )를 거세시키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먼저 당시 중국의 원나라의 환관의 거세 전통이 넘어온 것이다.
두번째는 내시는 왕족의 허드렛일을 하여 궁녀를 비롯 왕의 가족들과의 만남이 잦았는데,
그들을 탐할 수 있기에 생식능력을 없앴다고 한다.
세 번째는 생식능력이 있어 가족이 생기면 왕을 보필하는 데 집중하지 못하기 떄문에
거세를 시켰다고 한다.
후에 내시들은 자신의 친자식은 얻지 못해도 첩을 거느릴 수 있었고,
대를 잇기 위해 양자를 들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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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들의 거세는... 중요한 부분을 자르는 건가요?
초기의 거세는 음경과 고환(양물) 모두를 자르는 형태였다. ( 조선에는 이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
그러나 제대로 된 시술 없이 무작정 음경을 자르자 요도가 말려들어가 요도가 막혀 죽는 소년들이 많아졌다. 이 때는 생존확률이 반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그나마 체계적인(?) 수술방법이 나왔는데 고환과 음경을 모두 자른 후 요도가 말려들어가지 않게 하기 위해 쇠꼬챙이를 요도 깊숙이 꽂아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말려들어가지 않을만큼 상처가 아물면 쇠꼬챙이를 뺐다고 한다. 이 때 소변이 뿜어져 나오면 수술이 성공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고 한다.
나중에는 고환만 잘라도 생식을 막는 원초적 거세의 목적이 충족됨을 알고, 고환만 자르는 형태로 변경된다. 고환을 자르는 것은 칼로 자르는 경우도 있고, 줄로 오래 묶어두어 썩게 만들어 떼어내는 방법도 있었다고 한다. 후자가 고통이 적어 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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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내시는 거세를 하지 않고, 태어나자마자 고환을 주무르거나 실 등으로 묶어 압박하여 정자 생성을 불가능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이는 성인이 되며 기능이 다시 돌아오는 경우도 있어서 거세의 형태가 굳어졌다고도 한다.
개에게 생식기를 물려 불구가 된 사람을 내시로 쓰기도 했다고 한다.
왜 거세를 하면서까지 내시가 되려고 했을까?
처음에 내시는 왕 곁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역할만 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내시가 높은 벼슬을 얻거나 왕의 최측근이 되는 경우도 발생했다.
내시는 재물을 모을 수도 있고, 권력을 행사할 수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권력을 얻으려고 내시에게 뇌물을 바치는 자들이 늘어났고, 내시의 권력은 왕권을 위협할 정도로 클 때도 있었다고 한다. ( 중국의 경우. 대표적으로 십상시의 난 )
그래서 거세를 하면서도 내시가 되고자 하는 이가 있었고, 많은 경우 부모가 자식덕을 보기 위해 거세를 시키는 경우도 많았다 한다. 살림살이가 너무 어려워 자식이나마 왕실에서 살게 하기 위해 거세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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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들은 성관계를 할 수 없었나?
어릴때 거세를 한 경우에는 남성호르몬 생성전이라 성기의 발육이 없어
성관계가 불가능하였다고 한다.
커서 거세를 하거나 태어날 때부터 선천적 고자는 성관계는 가능했다고 한다.
조선 말기에는 내시들의 문란한 성생활로 성병에 감염되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물론 성기(음경)까지 거세한 내시의 경우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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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내시들은 소변을 어떻게 보았나?
음경까지 자른 경우에는 보통 앉아서 소변을 보고,
고환만 잘라낸 경우에는 똑같이 서서 소변을 보았다고 한다.
음경까지 자른 경우는 소변 조절이 안되서 항상 소변이 찔끔찔끔 나와 옷에서 지린내가 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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