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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감성, 자기계발 놀이터

[책 정리] 이 몸, 이 무상한 수레, 덧없는 렌터카 - 공부하다 죽어라

by 돼지왕 왕돼지 2023.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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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과 사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매 순간 깨어 있고, 매 순간,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간단한 진리지만 대단히 흥미로운 인간 상황이다.

우리는 단지 이 몸, 이 무상한 수레, 어느 날엔가는 우주로 돌아가게 될 이 렌터카를 만족시키기 위해 생을 소비하고 있다.

하지만 만일 잠에서 깨어나 '참나'를 진정으로 이해한다면, 이 렌터카를 우주에게 돌려줄 때가 되어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때는 문제될 것이 아무것도 없다. 죽을 때는 죽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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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케타 : "멸하지 않는 영원한 것을 원합니다. 영원히 지속되는 것, 다시 말해 '참나'를 원합니다."

야마 왕 : 이 거울 속을 깊이 들여다보면서 그대는 아주 오래된 질문을 해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대 자신에게 깊이 물어야 한다. '나는 무엇인가?' 육체에 대한 관념, 생각에 대한 관념, 그대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모든 관념들을 넘어서 가라. 그리고 오직 '모른다.' 로 돌아오라. 어떤 이원론적인 생각들이 일어나기 이전의 그 마음으로 돌아오라. 그러면 그대는 영원히 죽지 않는 '참나'를 맛볼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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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나를 '생각 이전의 마음' 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사실 언어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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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이 순간에 지저귀는 새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앞을 바라보면 앞의 이 방석은 노랗다.

매우 간단하다.

마룻바닥은 갈색이다. 특별하지 않다.

이미 이 순수하고 맑은 마음이 기능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 존재는 끊임없이 생각에 붙잡히고,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끊임없이 관념을 만들고, 감정적으로 혼란스러워진다.

그럼으로써 삶을 더없이 복잡하게 만들고, 이 참나를 잊어버린다.

그러나 이 순수하고 맑은 '나'는 언제나 자동적으로 기능하고 있다.

 

수행하면서 때로 사람들은 "나는 참나를 얻고 싶다.", "나는 참성품을 획득하고 싶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그것은 일종의 사견(그릇된 견해)이다.

일종의 실수이다.

왜냐면 이미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을 어떻게 얻겠는가?

 

수행이란 사실 돌아옴의 문제.

다시 말해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기억하는 일이다.

수행을 계속하면 지금까지 일생 동안 그것으로부터 분리된 적이 없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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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우리가 '나는 내 생각을 좋아하지 않아.', '나는 지금 내 마음을 좋아하지 않아.', '나는 항상 행복하고 싶어.' 라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고통을 일으키게 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순간순간 다만 '아하, 이것이 지금 나의 마음이구나! 이것이 행복한 마음이구나! 이것이 슬픈 마음이구나! 아하 밖에는 태양이 빛나고 있구나! 그렇구나!' 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의 진리" 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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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구보리 하화중생 : 먼저 그대의 참성품을 얻고, 그 다음에는 모든 존재를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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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세 가지 중요한 요소.

첫번째는 큰 믿음(대신심). 진정한 믿음은 어떤 대상에 대한 믿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믿고 계속 정진하는 것이다.

우리의 수행은 곧 크나큰 믿음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오직 이러한 진실한 마음으로 수행을 해나가면, 오직 그렇게 함으로써 마침내 결실을 얻게 될 것이다.

순간순간 깨어 있으면서 자신의 참성품을 진지하게 살피고, 생각 이전의 이 "큰 마음"으로 돌아온다면, 그 수행은 저절로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두번째는 큰 용기(대용기, 대분심). 사납고 때로는 성내며, 겁도 없고, 흔들림 없는 일념으로 무엇에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자와 같은 용기이다. 

매 순간 우리의 에너지가 오직 한 점에만 집중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큰 의심(대의심, 큰의문)이다. 우리의 '참나'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때때로 마음에 감정이 일어나고 어떤 생각에 빠져 들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이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곧바로 '나는 무엇인가? 모른다." 로 돌아와야 한다.

이 질문이 언제나 우리를 '참나'로 돌아오도록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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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우리가 참나를 경험한다 해도, 우리의 참성품을 조금 맛본다고 해도, 삶을 자기중심적인 업의 조건에서 살아간다면 그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본래 수행의 올바른 기능은 이 우주를 돕는 데 있다.

왜냐면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본질과 온 우주의 본질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믿음, 용기, 의심이 우리로 하여금 참나로 돌아가게 하고, 나아가 모든 존재를 돕는 바탕을 마련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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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베풂의 의미는 거기에 주는 자도 없고, 받는 자도 없으며, 또한 베푸는 물건마저도 없는 것이다.

진정한 보살의 베풂은 자신의 이득을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남을 돕는다는 것이 곧 나를 돕는 것이다.

참성품에 대해 알게 된다면 이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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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타인에 대한 최상의 배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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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으라! 그대의 의견, 그대의 조건, 그대의 상황을 모두 내려놓으라!

지금 그대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순간순간 행하라!

그대의 올바른 상황, 올바른 관계, 올바른 역할을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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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삶이란 어떻게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는가.

어떻게 우리의 삶을 매 순간 완전하고 온전하게 사는가 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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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순간순간을 충실하고 완전하게 살아간다면, 이미 우리는 참나가 자동적으로 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매 순간 우리는 완전하며, 우리와 이 세상은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

만일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들로 우리의 생을 허비한다면, 우리는 이 참나를 가리는 구름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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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과 사로부터 진정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오로지 순간순간 깨어 있고, 순간순간 나는 누구인가를 묻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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