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로 알고 있어도 마음대로 안 되네?
퇴직하고 한 달이 지났다.
회사 기밀 유지 차원(?)에서 자세히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퇴직을 준비하면서부터 퇴직하고 난 한달까지 나는 수없이 많이 지옥을 왔다갔다 했다.
어떤 스님이 그랬다. 불교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윤회가 없다고.
우리가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힌두교에서 얘기하는 윤회이지, 불교에서 얘기하는 윤회는 일상생활에서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하는 그런것을 윤회라고 한다고,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그런 것을 끊어내는 것이 해탈의 의미라고.. 나는 이 불교의 윤회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여튼.. 나는 이 짧다면 짧은 한달 반이라는 기간에 얼마나 많은 윤회를 했는지 모른다. (힌두교식으로는 얼마나 많이 죽고 태어났는지 모른다.)
그리고 한달쯤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라는 막연한 시간에 대한 기대는 처참하게 무너졌다.
날씨가 추워져서일까? 12월이 되고 나서 뭔가 더 혼란스럽고, 더 큰 압박감을 느낀다.

내 이 결정이 옳은 것인가?
이 질문이 나를 참 괴롭게 했다.
개발자스럽게 true/false (참/거짓)으로 나뉘며 따라오는 질문은 가지에 가지를 친다. 그리고 가능성이 어느 정도 있는 최악의 상황들까지 상정한다.
그 가지는 꽤 길게 복잡하게 뻗는다. 마치 수십년을 한 자리에 뿌리내리고 있는 나무의 뿌리처럼!
게다가 그냥 최악의 상황을 피하는 것으로는 안 된다.
그 가지에서 '최선'을 찾아 여러 가지들을 계속 탐방한다. 그리고 그 결정이 맞는 것인지 '가능성' 만으로 계속 검증한다.
사실 머리로 안다. 스님들의 법문을 많이 들어서, 그리고 불교 관련 책들을 많이 읽어서 이런 '가능성'에 대한 선택의 결과는 사실 그 누구도 모른다는 걸..
사실 스님들 이야기를 참고할 것도 없다. 간단히 생각해보면 안다. 가능성은 가능성일 뿐.. 그리고 내가 선택하지 않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래는 모르는 것임을.. 그래서 '최선' 이라는건 어느 상황에서도 확신할 수 없는 단어라는 것임을..
하지만 나는 아직 해탈하지 못하고 번뇌에 빠진 중생으로서.. 그 가능성 측면을 맹신하고 아직도 최선이라는 번뇌에 빠져 계속 고민한다.
언제쯤 이런 번뇌에서 벗어나 '다만 모를뿐' 상태로 들어갈 수 있을까?
언제쯤 '시절인연' 이라는 키워드가 내 뇌를 완벽히 지배하여 마음 편하게 물 흐르는 듯 흘러갈 수 있을까?
불현듯 엄습해 오는 불안감이 있다.
요즘 내 워치에서 계속 알림을 준다.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으셨나봐요. 심호흡을 해보세요"
회사를 다닐 때는 한번도 받아보지 못한 메시지이다.
기술이 발달했음을 느끼면서도, 내 스트레스를 잘 인지하고 나를 챙겨주는 이 시계가 나를 위로해주는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ㅎ
이 불현듯 엄습해 오는 불안감의 정체는 사실 알고 있긴 하다. 문제는.. 그것들이 복합적으로 한번에 뜬금없이 확 밀려오는 게 문제이다.
생활비, 취업, 투자, 예상치 못한 이벤트들, 내가 정말 힘들어하는 추위, 주변인들에 대한 눈치 등...
하나씩 따져봐도 딱히 돌파구가 시원하게 보이는 것이 아닌데, 이런 것들이 가끔씩 "야! 너 긴장 안타?!" 라고 외치는듯 진짜 돌풍처럼 확 몰아친다.
어떤 관련 이벤트가 있는것도 아니다. 그저 만화를 재미있게 보며 낄낄대고 있었을 뿐인데.. "야! 너 긴장 안타?!" 라고 외치는듯 갑자기 확 찾아온다.
그러면 딱히 해답이 없는데도 반사적으로 전기장판 속에서 가계부를 펼치고, 취업 사이트들을 열고, 증권사 앱을 켜고, 핸드폰 알림들을 확인해본다.
이 이슈들은 상호 의존성이 있기 때문에 각개격파도 어렵다. 난제를 만났다.
사실 또 내가 좋아하는 불교식으로 처리하면 간단하다.
이 불안감이 왔을 때 '아 불안감이 왔구나'를 알아채고, '하되 함이 없이', '시절인연'을 생각하며 물 흐르듯 흘러가면 되고, 그 와중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된다.
근데 이게 쉽냐고! 불교가 말하는게 뭔지는 알겠으나.. 범부중생이 이걸 할 수 있겠느냐고!
중생은 이래서 늘 괴롭다.
어제는 국회도서관을 갔다.
자리를 잘 못 앉은 것 같다.
왼쪽 아저씨는 계속 펜으로 공부를 하면서 어떤 깨달음이 있을때 "크으 그러치!" 라는 소리를 입 밖으로 슬면시 내고, 노트에 적은 어떤 글자에 동그라미와 밑줄을 '박박박' 소리를 내며 펜으로 그었다. 그리고 쉬지 않고 들려오는 속트름 소리에 나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오른쪽 아저씨는 큰 이슈는 없었는데, 계속 쉬지 않고 속트름을 해댔다.
나도 50대가 되면 저렇게 어쩔 수 없이 쉬지않고 속트름을 하게 되려나..? 이것 역시 무서웠다.
최근에 12처에 대해서 읽고 공부했다.
우리의 감각기관이 각각대상과 만나면서 '접촉'을 일으키면서 '분별심'이 생긴다고 했다.
불교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크으 그러치!" 라는 소리(감각대상)가 나의 귀(감각기관)와 만나면서 '식(인지)'가 발생하고, 여기서 분별을 일으킨다.
사실 나의 귀에 들려온 소리는 그냥 "크으 그러치!" 라는 소리인데, 나의 뇌에서는 '도서관에서는 조용해야지', '왜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저런 소리를 낼까' 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이것을 '나쁜 것'이라고 판단(분별)한다. 그리고 괴로워한다.
만약 귀에 들려온 소리가 내가 좋아하는 조용한 클래식 소리였다면, 나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부드러운 클래식 배경이 화이트 노이즈처럼 여겨져 즐거웠을 것이다.
불교적으로 봤을 때는 다만 '소리'가 있었고, 그 소리를 내가 '감각'했을 뿐인데 어떤 소리냐에 따라 나의 분별심이 일어난 것이다.
이걸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저 소리에 대해 아무런 판단 없이 그냥 수용할 수 있을까? 불교의 길은 어렵기만 하다.
그래서 내가 왜 이런것들을 주저리주저리 썼냐고?
그냥 누군가를 붙잡고 이야기하기에는 공감대 형성도 어렵고, 딱히 해결법이 없는데 주절거리는 것도 상호간에 힘들고..
그냥 이렇게 글로 쓰다 보면 약간 더 생각도 정리하게 되고 그래서..
가능한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이론적으로는(?) 불교적 수양으로 다 떨쳐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멀고 먼 부처가 되는 길.. 지금 나에게 '해탈'의 깨우침을 주려고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보다.. 그런가보다.. 라는 생각으로 '하되 함이 없이', '시절 인연' 등의 말을 기억하며 앞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뿐!
오늘도 스스로에게 화이팅을 외쳐본다!!
돼지왕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