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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 외국인이 경복궁 보듯 우리도 오사카성은 봐줘야죠 [오사카] 외국인이 경복궁 보듯 우리도 오사카성은 봐줘야죠 물론 오사카성은 우리네 경복궁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오사카성은 다이묘(영주급?)나 쇼군(장군)들이 거주하는 곳인 동시에, 방어를 할 수 있는 요새적 성격을 갖는다.이 오사카성은 일본 역사의 거물급들이 다 거쳐간 곳이다.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여튼..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와서 경복궁을 보고 역사와 건축에 대해 알아가듯,우리도 오사카성에 가면 일본 성의 역사와 건축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 갈 수 있으리라. 참고로 일본에 3대 성을 꼽는데, 그 중 하나가 이 오사카성이다.( 다른 2개는 히메지성, 구마모토 성 ) 오사카성은 우선 가장 바깥쪽 해자(물 웅덩이)부터 방어적 성격을 보여준다.그리고 그 해자 안쪽으로 바로 이렇게 높고 두꺼운.. 2018. 5. 23.
[서울/데이트] 창경궁 - 궁 투어를 해보아요 #2 워낙 이런 저런 주제로 급한것부터 쓰고 하다보니..창경궁 투어 1편을 2015년 10월에 작성하고..2부를 2016년 12월에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허허... 1부에서는 창경궁의 동부 지역을 보았는데, 이제 나머지 지역을 2부에서 투어합니다. 성종태실 및 태실비 태실은 왕족의 태반을 묻어 기념했던 조형물이며 태실비는 그 사연을 기록한 비석이다.태실은 전국의 풍수가 좋은 명당에 흩어져 있었고, 성종의 태실은 경기도 광주에 있었다.일제는 1928년 즈음에 조선 왕실의 태실 대부분을 서삼릉으로 모으는 과정에서 가장 형태가 온전한 성종태실만 이곳으로 옮겨 연구용으로 삼았다고 한다. 이것이 성종 태실 및 태실비인데..무슨 왕족은 태반까지도 묻어주는지... 서민들은 죽어서 묻히는 무덤도 변변찮았을 것 같은데..왕은.. 2016. 12. 17.
광해군은 어떤 왕이었나? 정말 폭군이었을까? 손가락 꾸욱~♥ 응원해주세요!! 광해군(光海君, 1575~1641) 조선 15대 왕으로 자신의 왕위를 위협하는 정적들을 대상으로 수 차례 옥사를 일으켰고, 외교는 실리외교를 선택하였다. 그의 정치적 태도로 결국 인조반정을 통해 축출되었고 끝내는 묘호조차 갖지 못한 군주가 되었다. 그가 연산군처럼 포악한 왕은 아니었으나, 유교사상이 강한 조선의 시선에서 광해군은 폐륜아였기에, 묘호를 갖을 수 없었다. 분명 나라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많은 업적을 남긴 왕 중 하나이다. 선대왕 선조 때 7년전쟁 임진왜란을 겪으며 분조( 조정을 나누다 )를 통해 자신은 평양이나 의주 등지에 상주하고, 전쟁을 위한 조정으로 급하게 광해군을 세자에 책봉하여 앉힌다. 광해군은 첩의 자식이었다. 이 때 광해군은 전쟁 기간 중 평안.. 2013.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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