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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 놀이터/음식 이야기

[책 정리] 26. 용기 있는 개혁자, 상카라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by 돼지왕 왕돼지 2020. 1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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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용기 있는 개혁자, 상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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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카라는 나라가 자급자족을 하기에 충분한 식량을 생산할 수 있어도 사회정의가 이룩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곧 근본적인 개혁에 나섰다.
취임 당시 공무원 수가 3만 8000명이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종래의 지연, 혈연 등으로 채용된 것이다.
당시 아프리카의 사정은 대체로 이와 비슷했다.
행정조직은 거대하고 비효율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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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월급으로 15~20명을 먹여 살리는 공무원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함부로 자를 수도 없었기에, 자주관리정책을 채택하여 국내의 30개 행정구를 자치제로 전환하고 주민들 자신이 그 지역을 다스리게 했다.
관리도 직접 뽑을 수 있게 했다.
그래서 도로건설이나 수도사업, 보건의료사업 등 자신들의 실제 생활에 필요한 공공 서비스를 실시해 나가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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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카라의 주민주도형 정책은 종족간의 갈등을 부채질한 위험이 컸다.
그래서 상카라는 국가 차원의 대규모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이는 수도 와가두구에서 탐바오까지의 철도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는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식민지지배 시대의 비참한 착취 기억을 떠올리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금전적인 보수가 없는데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다.
물병과 몇 줌의 쌀만 지닌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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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카라의 또 다른 개혁은 인두세(납세능력에 의하지 않고 각 개인에게 일률적으로 부과하는 세금)를 폐지한 것이다.
그 전에는 인두세를 내지 못하면 마을의 징세담당자가 소나 양, 비축해둔 곡식을 강제로 가져가거나 미납분의 대가로 여성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렇게 돈이나 곡식으로 감당할 수 없는 농민들은 마을 우두머리의 토지에서 강제로 노동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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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인두세 폐지에 이어 취한 조치는 개간 가능 가능한 토지의 국유화였다.
그 전에는 마을의 운영책임자들이 마음대로 땅을 할당해주었다.
그리고는 무엇을 경작해야 할지 명령하고 농사 일정을 결정하고, 돈이나 수확물 혹은 강제노동이라는 형태로 대가를 징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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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개혁의 결과로 부르키나파소는 4년 만에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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