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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자의식이 브레이크를 걸어서 자연스럽게 행동하지 못한다.
철학자
자의식 브레이크를 거는 목적은 무엇인가? ( 목적론에 입각 )
청년
웃음거리가 되고 싶지 않다.
얼뜨기 같은 놈으로 보이고 싶지 않다.
철학자
자연스러운 나, 있는 그대로의 나에 대해 자신이 없다는 말이군?
자연스러운 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결국 공동체 감각이 필요하다.
자기 집착(self interest) 타인에 대한 관심(social interest)으로 돌리고, 공동체 감각을 길러야 한다.
이에 필요한 것이 '자기 수용', '타자 신뢰', '타자 공헌'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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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수용
중요한 것은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이다.
"무엇이 주어졌느냐?" 가 아니다.
적극적으로 자신을 긍정할 필요가 없다.
자기긍정이 아닌 자기수용을 해야 한다.
자기수용은 "하지 못하는 나" 를 그대로 받아 들이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자신을 속이는 일은 없다.
결점이 없는 인간은 없다.
자신의 결점이나 상태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더 나은 상태로 가까워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자기수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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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 포기
변할 수 있는 것과 변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 것에 대해서는 바꿀 수가 없다.
하지만 주어진 것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내 힘으로 바꿀 수가 있다.
바꿀 수 없는 것에 주목하지 말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바꿀 수 없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긍정적 포기이며,
이를 통해 자기수용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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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네거트
신이여, 바라옵건데 제게 바꾸지 못하는 일을 받아들이는 차분함과 바꿀 수 있는 일을 바꾸는 용기와 그 차이를 늘 구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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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우리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저 "용기" 가 부족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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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포기" 라는 말은 원래 "명확하게 보다" 는 의미가 담겨 있다.
만물의 진리를 단단히 확인하는 것, 그것이 포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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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신뢰
먼저 신용과 신뢰를 구분해야 한다.
신용에는 조건이 따른다. ( credit )
은행에서 돈을 빌리려면 담보가 필요한데 이것이 신용.
신뢰란 일절 조건을 달지 않는 것이다.
신용할 수 있을 만큼 객관적 근거가 없더라도 무조건 믿는 것이다.
물론 배신당할 수 있고, 손해를 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믿을 유지하는 태도를 신뢰라고 부른다.
배신할지 안 할지를 결정하는 것도 타인의 과제이다.
우리는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 만 생각하면 된다.
아들러 심리학은 타인을 무조건 신뢰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조건 없는 신뢰란 인간관계를 잘 맺기 위한, 수평관계를 맺기 위한 수단이다.
만약 특정인과 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면 단칼에 관계를 끊어 버려도 상관없다.
끊느냐 마느냐는 나의 과제이다.
배신당했을 때, 슬프면 마음껏 슬퍼해도 좋다.
그러나 고통이나 슬픔을 마냥 피하려고만 하면 운신의 폭이 좁아져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우리는 남을 의심할 수도, 신뢰할 수도 있다.
선택은 스스로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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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자기 수용" 과 "타자 신뢰" 를 거치면 타인의 존재가 다르게 보인다.
"친구" 가 된다.
친구가 된다는 것은 "여기에 있어도 좋다" 는 소속감을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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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공헌
자기희생이 아니다. ( 희생은 사회에 지나치게 적응한 사람이라고 아들러는 말했다. )
"나" 를 버리고 누군가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가치를 실감하기 위한 도움이 되는 행위이다.
가장 쉬운 타자공헌은 "일"이다.
사회에서 일, 집안일 하는 것.
노동이란 돈을 버는 수단이 아니라 타인에게 공헌하고, 공동체에 헌신하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은 그것이 "나의 가치를 실감하는 나를 위한 것" 이다.
(물론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다.)
남이 내게 무엇을 해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남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고 실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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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자기 수용, 타자 신뢰, 타자 공헌은 순환구조로 연결되어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인다, 즉 "자기수용"을 한다.
-> 그러면 배신을 두려워하지 않고 "타자신뢰" 를 할 수 있다.
-> 타인을 무조건 신뢰하고 그 사람들을 내 친구라고 여기면 "타자공헌"을 할 수 있다.
-> 타인에게 공헌함으로써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실감하게 되며 있는 그대로 자신을 받아 들이는 "자기수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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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
행동의 목표
1. 자립할 것
2.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
심리적 목표
1. 내게는 능력이 있다는 의식을 가질 것
2. 사람들은 내 친구라는 의식을 가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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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자립할 것, 내게 능력이 있다는 의식을 가질 것 -> 자기수용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 사람은 내 친구라는 의식 -> 타자신뢰, 타자공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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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이론상으로 납득이 가도 실천하기는 어렵다.
철학자
아들러 왈 : 개인심리학은 아마도 모든 심리학 중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 가장 힘든 학문일 것이다.
아들러 심리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삶을 변화시키려면 "그때까지 살아온 햇수의 절반" 이 필요하다는 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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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나를 부당하게 대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대해야 하나?
철학자
어떤 경우라도 공격하는 "그 사람"만 문제이지 결코 "모두" 가 나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 가지에 대해 "모두", "늘" 이라고 말하는 삶의 방식을 "인생의 조화가 결여"되었다고 한다.
유대교 교리 중 "열 명의 사람이 있다면 그 중 한 사람은 반드시 당신을 비판한다. 당신을 싫어하고, 당신 역시 그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열 명 중 두 사람은 당신과 서로 모든 것을 받아주는 더없는 벗이 된다. 남은 일곱 명은 이도저도 아닌 사람들이다." 나를 싫어하는 한 사람,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이 아닌, 나를 사랑해주는 두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의 조화가 결여된 사람은 나를 싫어하는 한 사람에 집중한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비난하는 그 한 사람에게 주목하고 "모두가 나를 비웃고 있어" 라고 착각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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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공동체에 공헌을 하고, 공헌이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본인이 아니다.
타인의 과제이다.
게다가 진짜 공헌을 했는지 아닌지는 원칙적으로 알 수도 없고,
타인에게 공헌할 때 우리는 설사 아무도 그것을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 는 주관적인 감각, 곧 "공헌감" 을 가지면 그걸로 족하다.
즉 "행복" 이란 "공헌감" 이다.
청년
그럼 존재의 관점에서, 사람들은 존재함으로써 공헌감을 가진다고 해석하면 행복한거네요?
철학자
맞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행복하다" 는 뜻은 아니다.
행위의 차원에서든 존재의 차원에서든 자신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것".
즉 "공헌감" 이 꼭 필요하다.
청년
남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인정을 받는 것이 공헌감 아니냐?
인정욕구는 부정한다메, 모순이지 않냐?
철학자
인정욕구를 통해 얻은 공헌감에는 자유가 없다.
우리는 자유를 선택하면서 더불어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일부러 인정 받지 않아도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 고 실감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시 말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 는 "주관적인 감각" 이 바로 "공헌감" 이며, 행복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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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그냥 내 존재가 도움이 된다로 만족하며 사는게 행복이냐?
자아 실현에 의한 행복이 보편적 행복 아니냐?
철학자
아이들은 부모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첫 단계부터 "특별히 잘 한다". (순종적이다.)
그러나 특별히 잘 하는 것이 없는 경우 태도를 바꿔 "특별히 못 되게 군다"
둘 다 목적은 같다.
남들로부터 주목받고 평범한 상태에서 탈피해 "특별한 존재" 가 되는 것이 목적이다.
특별히 못 되게 굴기로 결심한 아이는 노력은 외면한 채 주목만 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를 "안이한 우월성 추구" 라고 부르며, 이는 불건전한 태도이다.
"복수"와도 연결되는데, 상대를 난처하게 하면서 동시에 "특별한 존재" 가 되고 싶은 심리 상태이다.
청년
그런데 모두가 "특별히 잘하는 상태" 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 "특별히 못되게 구는 아이들" 이 분명히 발생하지 않냐?
철학자
그래서 "평범해질 용기" 가 필요하다.
"특별" 해지려고 하는 이유는, 평범한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별히 잘 하는 상태가 실패로 돌아가면 극단적으로 특별히 못되게 구는 상태로 빠르게 넘어가는 것이다.
보통인 것, 평범한 것은 좋지 않은 것일까? 열등하단 것일까?
그렇지 않다. 사실은 누구나 평범하다.
그리고 "자기 수용" 은 평범해지기 위한 첫 걸음이다.
"평범해지는 것" = "무능해지는 것" 이라는 착각을 없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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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평범에 만족하고 산다면, 미래 목표가 줄어들고, 이를 대비할 필요가 없는 것인가?
철학자
더 나은 최종 목표를 산 정상이라고 본다면,
인생의 대부분을 길 위에서 보내게 되며, 정상에 오르는 순간부터 진짜 인생,
오르는 과정은 가짜 인생이 되기 쉽다.
인생은 선이 아니라 점이 연속되는 것이다.
"지금" 이라는 찰나의 연속이다.
우리는 "지금, 여기"를 살아갈 수밖에 없다.
청년
여튼 현재에만 포커스를 맞춘다면, 이는 눈을 가린 채 걷는 것과 같은 것 아니냐?
철학자
당연한 것 아니냐. 뭐가 문제냐?
스포트라이트를 생각해보면 된다.
강렬한 스포트라이트가 나한테 비춰지면, 바로 앞줄조차 보이지 않는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인생 전체에 흐릿한빛을 비추면 과거와 미래가 보인다.
하지만 "지금, 여기" 에 강렬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면 과거도 미래도 보이지 않게 된다.
우리가 좀 더 "지금, 여기" 를 진지하게 살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과거가 보이는 것 같고, 미래가 예측되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인생은 찰나의 연속이며, 과거도 미래도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와 미래를 봄으로써 스스로 면죄부를 주려는 성향을 버려야 한다.
과거가 어찌되었든 간에, 미래가 어찌 될 것이든간에 "지금, 여기" 에서 생각할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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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지금, 여기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는 것은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진지하고 빈틈없이 해나가는 것을 이야기한다.
목표가 없어도 된다.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사는 것, 그 자체가 춤이다.
심각해질 필요가 없다.
진지하게 사는 것과 심각한 것을 착각하면 안 된다.
인생은 단순하다.
에네르게이아적 관점에서는 인생은 언제나 완결되어 있다.
그래서 "지금, 여기"에서 생을 마친다고 해도 불행하다고 할 것이 없다.
스무 살에 마친 삶도 아흔 살에 마친 삶도 모두 완결된 삶이며 행복한 삶이기 때문이다.
인생 최대의 거짓말, 그것은 "지금, 여기"를 살지 않는 것이다.
과거를 보고, 미래를 보고, 인생 전체에 흐릿한 빛을 비추면서 뭔가를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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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그럼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철학자
아들러는 "일반적으로 인생의 의미는 없다" 고 말했다.
즉 일반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의미는 존재하지 않는다.
부조리한 비극을 앞에 두고서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은 그 비극을 긍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무엇인가 행동을 취해야 한다.
칸트가 말한 경향성을 직시해야 한다.
인생의 의미는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내 인생에 의미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밖에 없다.
청년
그럼 나는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불어 넣을 수 있을까?
철학자
아직도 헤매고 있다는 것은 자유를 택하고자 하기 때문.
타인에게 미움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타인의 인생을 살지 않는, 자신만의 길을.
자유를 선택하려고 할 때 인간이 헤매는 것은 당연하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자유로운 인생을 살기 위한 지침으로 "길잡이 별" 이라는 것을 제시했다.
그 길잡이 별은 "타자 공헌".
"타인에게 공헌한다" 는 길잡이 별만 놓치지 않는다면 헤맬 일도 없고 뭘 해도 상관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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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타자 공헌이라는 별을 걸면 늘 행복이 함께하고 친구도 함께 한다.
그리고 찰나인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춤추고, 진지하게 사는 것이다.
과거도 보지 말고, 미래도 보지 말고, 완결된 찰나를 춤추듯 사는 것이다.
누구와 경쟁할 필요도 없고, 목적지도 필요 없다.
춤추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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