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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감성, 자기계발 놀이터

[책 정리] 미움받을 용기 네번째 밤 - 세계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 모든 사람과 수평관계를 맺어야 한다. )

by 돼지왕 왕돼지 2016.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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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책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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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과제의 분리는 결국 "나는 나, 너는 너" 라고 경계선을 긋는 게 아니냐?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며 일그러진 개인주의에 불과하다.


철학자

개인 심리학은 "Individual Psychology" 로 여기서 individual 은 "분할 할 수 없는" 이 어원이다.

아들러는 정신과 신체를 나누어 생각하는 것, 이성과 감정을 분리해 생각하는 것, 의식과 무의식을 나누어 생각하는 것 등 모든 이원론적 가치관을 반대했다.


마음과 몸은 하나이고, 더 이상 분리할 수 없는 "전체" 이다.

이성과 감성, 의식과 무의식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화가 나서 타인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것을 "감정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감정에 치우쳤다" 라고 변명하는 것은 인생의 거짓말이다.

전체로서의 "나" 가 소리를 지른 것이다.


인간을 더 이상 분리할 수 없는 존재로 파악하고 "전체로서의 나"를 생각하는 것을 "전체론" 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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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으려면 어느 정도 거리가 필요하다.

너무 밀착되어 있으면 마주보고 대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도 곤란하다.

과제의 분리는 타인을 밀어내는 발상이 아닌, 복잡하게 얽히고 설킨 인간관계의 실타래를 푸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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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인간관계의 출발점이 과제의 분리라면,

인간관계의 목표는 "공동체 감각" 이다.


타인을 친구로 여기고, 거기서 "내가 있을 곳은 여기" 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이 "공동체 감각" 이다.


아들러는 가정이나 학교, 직장, 지역사회는 물론 국가와 인류 등을 포괄한 전체와

과거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 축, 나아가서는 동식물과 무생물까지도 공동체에 포함된다고 했다.

즉 "만물" 을 공동체라고 역설.

그리고 아들러 스스로도 이 공동체는 "도달하지 못할 이상" 이라고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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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아들러 심리학은 공동체 감각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다.

공동체 감각이란 행복한 인간관계가 무엇인지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지표이다.


공동체 감각은 영어로 "social interest" 라고 한다.

즉 "사회적 관심" 이다.


사회의 최소는 나와 너.

자기에 대한 집착(self interest)를 타인에 대한 관심(social interest)로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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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자기중심적인 사람의 대표적인 사람은 "과제의 분리"를 하지 못하고 인정욕구에 사로잡힌 인간이다.

인정욕구에 사로잡힌 인간은 얼핏 타인을 보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자기 자신밖에 보지 않는다.

"나"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즉 자기중심적인 사람인 것이다.


타인에게 잘 보이려고 남들의 시선에 신경 쓰는 것은

타인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자기에 대한 집착과 다름없는 것이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 에만 집착하는 삶이야말로

"나" 이외에는 관심이 없는 자기중심적인 생활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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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공동체 안에서 내 자리가 있다고 느끼는 것

"여기에 있어도 좋다"고 느끼는 것, 즉 소속감을 갖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이다.


학업, 일, 친구, 그리고 연애와 결혼도 어떻게 보면 "여기에 있어도 좋다" 고 여겨지는 장소와 관계를 찾는 것이다.


인생의 주인공이 "나"라는 것은 문제가 없다.

그러나 "나" 는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지만, 어디까지나 공동체의 일원이자 전체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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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자기 자신밖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본인이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은 타인이란 나를 위해 뭔가를 해줄 사람에 불과하다.


기대가 채워지지 않을 때 그들은 크게 실망하고 심한 굴욕감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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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우리는 모두 "여기에 있어도 좋다" 라는 소속감을 갖기를 원한다.

하지만 아들러 심리학에서 소속감은 가만히 있어도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공헌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


"인생의 과제" 에 직면하는 것이 공헌이다.

일, 교우, 사랑이라는 인간관계의 과제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사람은 내게 무엇을 해줄까? 가 아니라 "내가 이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를 생각해야 한다.

그것이 공동체에 공헌(commit)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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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소속감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획득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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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공동체 개념을 다시 설명해달라


철학자

공동체의 범위를 "무한대" 로 생각하면 된다.

눈 앞의 공동체에만 매달리지 말고 자신이 다른 공동체, 더 큰 공동체에 속해 있고, 그곳에서도 어떠한 공헌을 할 수 있다는 자각을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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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우리가 인간관계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출구가 보이지 않을 때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더 큰 공동체의 목소리를 들어야 햔다.


예를 들어 학교라고 해서 학교라는 공동체의 상식(공통 감각)으로 사리판단을 하지 말고,

더 큰 공동체의 상식을 따르는 것이다


가령 학교에서 교사가 절대적인 권력자라고 할 때,

그런 권력이나 권위는 학교라는 작은 공동체에서만 통용되는 상식이다.

"인간 사회" 라는 공동체로 생각하면 교사와 학생은 대등한 "인간"이다.

따라서 교사가 부당한 요구를 한다면 정면으로 이의를 제기해도 상관 없다.


이는 너와 나의 관계에도 해당되는데, 만약 이의를 제기해서 무너질 정도의 관계라면

그런 관계는 없느니만 못하다.

끊어버리면 그만이다.


관계가 깨질까 봐 전전긍긍하며 사는 것은 타인을 위해 사는 부자유스러운 삶이다.


보다 다른 "나와 너", 보다 다양한 "사람들", 보다 큰 "공동체"는 반드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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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근데 과제를 분리하면서 어떻게 원만한 관계를 만드냐?


철학자

"수평 관계" 가 필요하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타인과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칭찬은 금물이다"라는 입장.

물론 체벌, 야단도 모두 금물.


칭찬 행위는 "능력 있는 사람이 능력 없는 사람에게 내리는 평가" 라는 측면이 포함되어 있다.

즉 무의식중에 상하관계, 수직관계를 만들 수 있다.

인간이 남을 칭찬하는 목적은 능력이 뒤떨어지는 상대를 조종하기 위한 것이다.

감사하는 마음과 존경하는 마음도 일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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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인간 관계에서 "개입" 이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인간관계를 수직관계로 보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를 수직으로 받아들이면, 상대를 자신보다 아래라고 보고 개입을 하게 된다.

상대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끈다. 내가 옳고 상대는 틀렸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개입은 조종과 다름없다.


수평관계를 맺으면 개입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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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여기서 우리는 "개입" 과 "지원" 을 구분해야 한다.

아이를 공부시키려는 것에서 개입은 공부를 강요하는 것이고,

지원은 공부를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주고 스스로 과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곁에서 힘이 되어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말을 물가에 데리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 를 지켜야 한다.


수평 관계에 근거한 지원을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용기 부여" 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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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용기 부여는 결국 칭찬해주라는 거 아님?


철학자

인간은 칭찬을 받을수록 "나는 능력이 없다" 는 신념을 갖게 된다.

칭찬을 받고 기쁨을 느낀다면, 그것은 수직관계에 종속되어 있으며 "나는 능력이 없다" 고 인정하는 것과 같다.

칭찬은 능력 있는 사람이 능력 없는 사람에게 내리는 평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칭찬받는 것이 목적이 되면 결국 타인의 가치관에 맞춰 삶을 선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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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냐?


철학자

대등한 파트너에게는 "고맙다", "기쁘다", "도움이 되었다" 는 솔직한 심정을 전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타인을 "평가" 하지 않는 것이다.

수평 관계를 맺고 있다면 감사나 존경, 기쁨의 인사 같은 더 순수한 말이 나온다.


청년

고맙다보다 칭찬이 더 용기가 되진 않는가?


철학자

칭찬은 평가이다.

그 행위가 좋은지 나쁜지 결정하는 것은 타인의 기준.

그러나 칭찬받고 싶다면 타인의 기준에 맞춰 행동할 수밖에 없다.


반면 고맙다는 말은 순수한 감사의 인사.

인간은 감사의 말을 들었을 때 스스로 타인에게 공헌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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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인간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낄 때에만 용기를 얻는다."


열등감은 주관적인 가치.

"나는 가치가 있다" 라고 느끼는 것은 주관적이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스스로 가치 있다고 느낄 수 있느냐" 이다.


답은 간단하다.

"나는 공동체에 유익한 존재다" 라고 느끼면 자신의 가치를 실감할 수 있다.

즉, 남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 고 느끼는 것이다.


자신의 주관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에게 공헌하고 있다' 고 느끼는 것이다.


최종결론적으로는

"나는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된다" 를 인지하고 나는 인생을 살 가치가 있다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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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그럼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은 가치가 없는거냐?

노인, 환자는?


철학자

타인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행위" 의 차원으로만 보면 안 된다.

그 사람이 "무엇을 했는가" 가 아니라 "존재" 의 차원에서도 살펴야 한다.


우리는 "여기에 존재"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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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그런 걸 세상에서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아들러

누군가가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사람이 협력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당신과는 관계 없다.

내 조언은 이래요.

당신부터 시작하세요.

다른 사람이 협력하든 안 하든 상관하지 말고.


청년

나는 내가 존재하는 것만으로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철학자

다른 사람과, 한 명이라도 좋으니 수평관계를 맺을 것.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인간은 자신의 생활양식을 상황에 따라 이리 바꿨다 저리 바꿨다 할 만큼 임기응변에 능한 존재가 아니다.

요컨데 "이 사람과는 대등하게", "이 사람과는 상하관계로" 라는 식이 안 된다.


한 사람이라도 수직 관계를 맺고 있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인간관계를 "수직" 으로 파악하게 된다.


반대로 누구 한 사람이라도 그 사람과 수평관계를 맞을 수 있다면,

진정한 의미에서 대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생활양식에 전환이 일어나면서 그것을 계기로 모든 인간관계는 "수평"이 될 수 있다.


청년

회사 등의 사회 체계는 상하 조직으로 되어 있다.

사장과 일개 사원이 대등한 관계를 맺는 것이 가능하냐?


철학자

연장자 공경은 당연 중요하다.

친구처럼 지내라, 허물없이 행동하라가 아니다.

의식상에서 대등할 것, 그리고 주장할 것은 당당하게 주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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