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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리] 세상에 왔지만 세상으로부터 사라질 것들 - 공부하다 죽어라

by 돼지왕 왕돼지 2023.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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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스크리트 어에서 인간을 '둘라밤'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매우 얻기 힘든 드문 기회'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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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변화한다.

이 육신도 세상에 왔지만 세상으로부터 사라질 것이다.

고통은 그 변화를 막으려고 하는 데서 온다.

우리가 생각으로 만들어 내는 이 세상근본적으로 무상한 것이다.

그것들에 집착할 때, 그것이 무지이고, 고통의 원인이다.

하지만 생멸하는 이 모든 것 뒤에는 변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파란 하늘에는 구름이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온갖 변화가 일어나지만, 그 뒤에 항상 존재하는 그 무엇이 있다.

우리는 그것을 발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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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 : 모든 것은 변하며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없다는 불교의 기본 가르침.

선종 : 참선 수행을 통해 마음의 본성을 깨닫고자 하는 종파

교종 : 경전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주력하는 종파

대승 : 자비의 실천을 강조하는 한국, 중국, 일본의 불교

소승 : 개인의 깨달음을 중요하게 여기는 미얀마, 태국, 스리랑카 등의 남방 불교

 

위파사나 : 몸, 마음, 감각 모든 행위를 세밀히 관찰해 깨달음을 얻는 명상 수행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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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에 대한 인식은 실제로 끊임없이 무상을 자각하는 일이다.

 

불교의 근본 가르침은 다른 무엇보다도 무상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한다.

무상의 가르침으로 들어가는 근원적인 문 또는 길은 무상에 대한 알아차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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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네 가지 고귀한 진리인 사성제.

붓다가 깨달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네 가지 진리로, 고통과 고통의 원인, 고통의 소멸에 이르는 길.

 

깨달음을 얻은 후 준 첫 번째 가르침은 모든 것은 두카(dukkha).

모든 것은 항상하지 않고 무상하다. 그러므로 만족스럽지 않다. ( 모든 것은 고통이라고 잘못 번역되는 내용 )

 

모든 것은 그 본성상 변하고, 변하고, 끊임없이 변한다.

너무나 덧없고 무상하기 때문에 결국 고통에 이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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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에 관해 명상하라.

무상을 직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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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가 고통의 뿌리이다. -> 무지란 이 세상이 무상하다고 보지 않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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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을 무상하다고 보지 않는다면, 사물과 돈, 권력, 명예, 명성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뿐 아니라

자신의 생각으로 만든 세상까지도 영원히 곁에 둘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우리가 생각으로 만들어 내는 이 세상은 근본적으로 무상하다.

모든 생각, 모든 견해, 모든 느낌, 모든 조건, 그리고 모든 관념들은 본질적으로 다만 무상할 따름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들에 집착할 때, 그것이 곧 무지이다.

나의 생각, 나의 느낌, 나의 견해, 나의 정체성, 그 모든 것이 무상하다.

그 모든 것은 실체가 아니다.

그 모든 것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그 모든 것은 텅 비어 있다.

그러나 한순간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그것들에 집착할 때, 그것이 곧 무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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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나쁜 기분이나 감정을 경험한다 해도 그것은 결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기분, 아무리 황홀한 느낌을 갖는다 해도, 또는 어떤 종류의 행복감이나 경험하는 어떤 일상의 것들..

이것들을 아무리 좋아하고 아무리 갈망한다 해도 그것은 결코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

사랑, 명성, 지위, 명예 등 모든 것이 그와 같다.

결코 영원히 머물지 않는다.

그것들은 항상 변하고 변할 뿐이다.

그것들은 단지 생각의 배회일 뿐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나타날 때 우리는 그것들을 실체라고 생각한다.

그것들이 실체라고 착각하고 그것들에 집착한다.

그리고 그것들이 사라질 때 고통받는다.

 

비록 그런 생각이나 느낌, 말들이 항상 나타났다 사라지며 또 여러분이 그것을 안다고 해도,

다음번에 좋은 기분이나 좋은 상황이 나타나면 우리는 또다시 그것에 집착한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것들은 다시금 변화하며, 고통이 뒤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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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이 생각이 실제한다는 믿음, 그리고 이 생각이 영원하다는 믿음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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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가장 큰 고통은 변화를 막으려고 시도하는 데서 나온다.

우리는 낙오자가 되지 않기 위해, 변화를 막기 위해 날마다 더 빨리 달려야 하고, 더 힘들게 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나 큰 고통을 겪는다.

왜냐하면 변화하는 것을 볼 때 그것이 우리를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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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이러이러한 것이 무상하며, 무이며, 그 어느 것도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아무것도 믿을 수 없다고 단언하는 것은 단지 가르침의 한 부분이다.

모든 것이 무상하기 때문에 고통이며, 그래서 모든 것이 괴롭고 어렵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교의 가르침의 전부가 아니다.

불교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가르침을 보아야 하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가르침을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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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상생활이라는 땅 위를 걸어가면서 생각을 따라가기 때문에 언제나 마음속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들을 보게 된다.

좋고 나쁨, 행복과 슬픔, 얻음과 잃음, 오고 감, 나고 죽음. 이 모든 것은 단지 마음속에만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가 그러한 생각 이전의 자기 본성으로 돌아간다면, 생각 이전의 우리의 본성은 마치 파란 하늘과 같아 완전하고 무한히 푸르며 결코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발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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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오고 가고, 오고 가고, 오고 간다.

이것이 생멸법이다.

나타남과 사라짐이 없을 때 나타나는 파란 하늘의 마음, 나타남과 사라짐이 없어졌을 때 나타나는 이 고요가 바로 축복이다.

 

따라서 우리가 생각을 일으키면 나타남과 사라짐을 만들게 되고, 좋고 나쁨을 짓게 되며, 삶과 죽음을 만들게 된다.

나타남과 사라짐은 단지 우리의 생각에서 오는 것이다.

하지만 일단 우리가 우리의 참 본성으로 돌아가면 그것은 이미 완전하게 갖추어진 성품이다.

완벽하게 순수하고 깨끗한 본성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으로 지어낸 이 무상한 세상만을 쫓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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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가르침은 어떤 이념, 교리, 주의, 예를 들면 나타남과 사라짐의 교리 같은 것에 기초하지 않는다.

단지 이 세상을 보라.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라고 가르치고 있다.

"나는 무엇인가?" 하고 스스로 물어보아야 한다.

이 질문을 스스로 한다면 그것이 바로 무상과 항상의 세계를 통과하는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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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세계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한다.

이 외부 세계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 있다 해도 돈과 권력, 명성, 명예, 가족, 집, 부모님께서 주신 우리의 몸까지도 우리는 영원히 간직할 수 없다.

그런데 왜 그토록 많은 에너지를 그것들에 투자해야 하는가?

모든 것을 그냥 내려놓으라.

그리고 그 대신 스스로 "나는 무엇인가?" 를 물으라.

그것이 우리가 할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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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나는 무엇인가?" 를 첫번째 관심사로 둔다면, 이 온 세상은 결코 무상하지 않다.

이 온 세상은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을 것이다.

온 세상에 불만족스러운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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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삶에서 늘 선택을 한다. 해야만 한다

마음속 생각을 쫓아가면 이 세상은 무상하다. 생각을 쫓아가면 오는 것과 가는 것이 있다.

자신의 생각을 따르면, 온 세상이 오로지 두카, 즉 불만족 상태이다.

자신의 생각만을 쫓아갈 때, 세상은 단지 무상과 고통이다.

그 생각이 설령 불교적인 생각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결코 우리를 도울 수 없다.

자신의 생각을 쫓아간다면, 이 세상은 오직 고통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선택이다.

우리는 그렇게 살 수 있으나, 수행자로서 특별히 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이 생각은 세계에 집착하지 않고, 이 생각의 세계와 다투지 않고, 오로지 있는 그대로의 참 성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참 성품으로 돌아가라.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의 나의 참자아로! 이것은 매우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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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듣고, 다만 보고, 다만 냄새 맡고, 다만 맛보고, 다만 만져 보고, 다만 있는 그대로의 이 세계가 이미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다.

그것이 불교의 가르침이고 진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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