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린의 한지민, 정순왕후. 그녀의 정체는? |
참조 : 네이버 지식백과,
영조의 정성왕후가 죽고, 1759년 15세의 나이로 51세 연상( 나이 66세 ) 인 영조와 결혼하여 왕비( 계비 )로 책봉된다. ( 헐... 영조 이새끼.. )
정순왕후의 친정이 노론의 중심가문에 있었고, 사도세자는 소론에 기울어져 노론에 비판적이었기에 + 사도세자의 내외가 자신보다 10살정도 연상인 데서 빚어지는 갈등 때문에 영조가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1800년 순조가 11세로 즉위하자 신료들의 요청을 받아들이는 형식으로 수렴청정 ( 대리정치 ) 를 실시하여, 스스로 여자국왕을 칭하고, 신하들도 그의 신하임을 공언하는 등 실질적 왕의 모든 권한과 권위를 행사한다. ( 역린 마지막 보고 반성 좀 했을 줄 알았는데.. )
조정의 주요 신하들로부터 개인별 충성서약을 받았으며, 정조의 장례가 끝나자마자 사도세자에게 동정적이었던 시파인물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한다.
그 다음해에는 격렬한 천주교 탄압을 일으켜 정약용 등의 남인을 축출한다.
역린에서의 갈등.
참조 : http://blog.naver.com/periospa/208696781
역린에서는 정순왕후와 정조의 갈등을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역사서에는 그들의 갈등을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오히려 예의범절이 바랐던 정조가 정순왕후를 극진히 대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조는 아버지 ( 사도세자 ) 를 죽이는 데 한 몫한 정순왕후가 이뻐보이지만은 않았을 것이고, 노론 벽파 지지자인 정순왕후 입장에서도 소론 시파를 옹호하던 사도세자의 아들이 그렇게 달갑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영화에서는 이 점을 표면적으로 드러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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