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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4 0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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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光海君, 1575~1641)

조선 15대 왕으로
자신의 왕위를 위협하는 정적들을 대상으로 
 
수 차례 옥사를 일으켰고,
외교는 실리외교를 선택하였다.

그의 정치적 태도로 결국
인조반정을 통해 축출되었고
끝내는 묘호조차 갖지 못한 군주가 되었다.

그가 연산군처럼 포악한 왕은 아니었으나,
유교사상이 강한 조선의 시선에서
광해군은 폐륜아였기에, 묘호를 갖을 수 없었다.

분명 나라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많은 업적을 남긴 왕 중 하나이다.
 

이미지 출처 : ask.nate.com



선대왕 선조 때 7년전쟁 임진왜란을 겪으며
분조( 조정을 나누다 )를 통해
자신은 평양이나 의주 등지에 상주하고,
전쟁을 위한 조정으로 급하게 광해군을 세자에 책봉하여 앉힌다.
광해군은 첩의 자식이었다.
이 때 광해군은 전쟁 기간 중 평안도나 강원도 등을 돌며
민심을 수습하는 것은 물론
경상도나 전라도 등지로 내려가 군량을 모으고 군기를 조달하는 등의
상당한 공로를 세웠다.

임지왜란 때 상당한 공로를 세웠기에
광해군은 자신의 세자자리가 굳건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선조가 55세 되던 해에 인목대비와의 사이에서 영창대군이 태어난다.
평소에 선조는 광해군을 내심 못마땅하게 여겼기에
병중에 대나무 그림을 그려 신하들에게 보여준다.

그 대나무 그림에는 늙은 대나무, 나쁜 대나무, 그리고 어린 대나무(준순)이
나오는데 이는 각각 선조, 광해군, 그리고 영창대군을 의미했다.

선조는 승하 직전까지 세자 광해군이 문안을 와서
내시가 세자의 문안인사라고 아뢰면
임시로 봉한 세자인데 어째서 세자라고 부르느냐며 화를 냈다고 한다.

하지만, 별다른 문제 없이 광해군은 왕위에 오른다.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선조 말년에 자신을 반대하고 영창대군을 지지했던
세력들의 핵심인 유영경과 그 일당을 제거한다.

그리고 명나라 조정에 왕위 계승을 알리는 사신을 보내는데,
명나라에서는 장자인 임해군(서자 중 서열 1위)이 아닌
차자인 광해군이 왕위에 오른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사신들은 이런 저런 이유를 댔지만, 
명나라는 사실확인을 위해 조선에 되려 사신을 보냈고, 
광해군은 임해군에게 미친 행세를 시켜 위기를 모면한다.

임해군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광해군에게는 영창대군이라는 화근이 남아있었다.
마침 유명가문의 서자 7명이 연루된 모반 사건이 발각되는데, ( 칠서지옥 )
이 때 영창대군과 인목대비를 이 모반사건에 연루시켜
영창대군을 유배시켜 죽이고, 인목대비 역시 폐비로 만들어 서궁에 유폐시킨다.

광해군은 왕권에 장애가 되는 요소들을 하나 둘씩 제거해 가며 왕권을 강화했다.
임진왜란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민생 및 재정의 안정 확보를 위해 힘썼으며
이를 위해 대동법도 시행하였다.
또한 허준을 지원해 동의보감 편찬도 마무리하였다.


당시 조선의 사대국가는 명나라였으나
명의 세력은 기울어져 가고, 여진족의 힘이 강해지고 있었다.
 
광해군은 혹시나를 대비하여 국방 경비를 정비하고
무기 제조를 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다.
 
어느 날 명나라의 조선 군사 파병을 요청이 왔을 때
광해군은 교지를 내려 파병군사 대장에게 후금과 대적하지 말고
시세를 보아 
판단하라는 명을 내린다. 
전장에 도착했을 때, 명이 금에게 대패하자
조선군은 금의 진영과 협상하고 무조건 항복을 한다.
이로 인해 후금의 누르하치는 조선의 부득이한 사정을 이해한다며
지속적인 우호관계를 유지하고자 한다.

이것이 광해군의 실리적 외교라 불린다.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축출된다.
그의 업적은 조선의 일반적인 정책과는 반대되었으며
자신의 반대세력을 폭력적으로 제거하였다 하여 묘호도 갖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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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돼지왕왕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