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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리] 3. 순한 양으로 사는 법, 과도한 장애물 넘기 - 공부의 배신 (우수한 아이일수록 과대망상과 우울증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by 돼지왕 왕돼지 2020. 6.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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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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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동안 나는 과대망상과 우울증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아버지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지난날 나는 행복할 수 있는 기회를, 자유로울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그리고 다른 이의 성공에 두려워하지 않고 그들이 세상에 미치는 좋은 영향을 인정할 때 느끼는 기쁨 또한 잃었다.

시기와 질투야말로 우등생의 정신건상에 해로운 가장 큰 저주다. 사인 위스턴 휴 오든이 말한 것처럼, 단순히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혼자만' 사랑받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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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가족들은 겁을 먹고 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계층 간 이동은 정체되었다. 전 지구적 차원의 경쟁은 시간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중산층은 위태위태하고, 누군가 중상류층으로 올라서는 건 그 어느 때보다 힘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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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상류층의 고압적인 학부모에게는 모순이 존재한다. '헬리콥터 부모' 라는 말을 들어봤는가? 아이의 곁을 빙빙 돌며 압력을 가하고 비난을 서슴지 않는 부모 말이다. 이들은 체계적이며 관리가 잘되는 기술을 터득해 어린 자녀를 지휘, 감독한다.
그런가 하면 '방임형 부모'도 있다. 아이가 식당에서 제멋대로 뛰어도 내버려두고, 여덟 번째 생일이 지나도 여전히 신발끈을 묶어주고, 아이들에게 너희가 얼마나 멋지고 특별한 존재인지 아느냐고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이 다음에 크면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말하고, 꿈을 사랑하고 따라도 된다고 말하는 부모 말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유형, 즉 헬리콥터 부모와 방임형 부모는 정반대의 스타일이 아니다. 이 둘은 모두 같은 충동에서 비롯된다. 진취적인 기상을  심어주며 감시하는 행동, 응석받이로 기르면서 달래는 행동은 모두 '과보호'에서 나온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이 세상을 안전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잘못된 신념을 품고 있다는 증거다. 다시 말해 이들은 부모가 잘하면 그 무엇도 자녀를 방해할 수 없으며 자녀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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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가정의 십 대는 가난한 가정의 십 대를 포함해 그 어떤 십 대 집단보다 부모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덜 받는다고 한다. 칭찬은 따뜻하지 않으며, 부모가 그토록 주입하려고 열심인 과시적 자부심은 자기효능감(self-efficacy), 즉 어떤 일이라도 해낼 수 있다고 믿는 것과 다르다.
고압적인 부모들은 아이에게 이것저것 강요만 할 뿐 정서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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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내 아이가 교육을 받길 원한다. 하지만 누구도 내 아이가 '교육다운 교육'을 받길 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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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예일대 피더스쿨인 홉킨스에 다녔어요. 저는 그곳을 증오합니다. 그곳은 배움을 단순한 인내력 테스트로 바꾸어버렸어요. 제일 잘 버틴 '선수들'에게만 보상을 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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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자녀양육법이 말하던 그 모든 가치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호기심 배양, 올바른 품성과 공동체의식 교육,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으로서 능력 개발, 놀이의 기쁨과 자유의 중요성 같은 것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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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주의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필사적인 시도라고 한다.
완벽주의는 의욕적인 가정에서 쉽게 볼 수 있으며, 부모의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되면 아이는 스스로를 책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완벽주의는 칭찬과 정반대로, 스스로 부모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다고 여기게 만들어 자신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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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 있는' 아이는 부모의 요구에 반응해서 목표를 달성해 기쁨을 주는 데 익숙해진다. 아이들은 부모가 원하는 것을 부모에게 주고, 부모가 기대하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부모는 만족할 줄 모르고 끝없이 요구하는데, 그 이유는 만족이라는 것에 언제나 조건이 달리기 때문이다. 아이는 '절대로 만족할 만큼 훌륭하지' 못하다. 따라서 아이는 완벽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기대가 내면화되고 나면 그것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모든 성취도는 부모의 인정을 받기 위한 도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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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한 아이는 과대망상과 우울증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린다.

과대망상이란 자신이 월등하다는 망상이다. 과대망상은 자존감이 크게 부풀려진 것이다. SAT 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거나 골드만삭스에 취직했을 때 과대망상에 휩싸인다. 내적 독백은 이렇게 흘러간다. "모두 엿 먹으라고 해! 내가 이겼어." 과대망상은 세계를 정복할 계획을 세워 손안에 넣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의미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반면 우울증은 좌절을 맛보고 환상이 깨졌을 때 따라온다. 우울증은 자기혐오, 자기증오, 정신적 죽음과도 같은 감정적 마비를 의미한다. 또한 자책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우울증은 "난 제대로 잘 못해." "난 아직 멀었어." "난 최선을 다하지 않았어." "누구든 나보다 나아." 등등 스스로를 아주 형편없게 느끼도록 만든다. 우울증은 자신이 행복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서 비롯한다.

과대망상은 타인에 대한 경멸과 멸시를 포함하는 반면 우울증은 자기 자신에 대한 경멸과 멸시를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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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군가에게 '활동'을 위임한다. 그러므로 여러 단체에 얼굴을 자주 내미는 사람들에게 보상을 한다. 우리는 리더십을 고집한다. 그러므로 위에 오른 사람들에게 보상을 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원하는 것을 주는 사람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므로 우리를 잘 속이는 사람들에게 보상을 한다. 우리는 게임에 참여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처벌한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린 시절을, 대에게서 청춘을 훔치고 있다. 우리는 젊음을 규격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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