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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놀이터

사마천 거세 이야기

by 돼지왕 왕돼지 2021.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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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세는 궁에 공급할 환관(노비)를 만드는 목적도 있었지만,

하나의 형벌이기도 했다. 이를 "궁형" 이라고 부른다.

궁형을 받은 대표적인 유명한 사람은 "사기" 를 쓴 "사마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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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이 궁형을 받은 이유는..

한 무제 앞에서 흉노와 전투를 벌이다 패배한 이릉 장군을 옹호했기 때문.

'이릉은 중과부적(衆寡不敵, 아군(무리)은 적고, 적은 그렇지 않음(많음))으로 어쩔 수 없이 거짓항복한 것이며 그는 훌륭한 장수다' 라고 변호함.

또한 이릉이 고립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이릉의 무능이 아닌 최고 사령관의 작전 실패에 원인을 둠.

참고로 최고 사령관은 한무제의 애첩인 이부인의 오빠 이광리였다....

이 때 사마천의 나이는 4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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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사마천에게는 사형이 내려졌다.

당시 한나라 법에 따르면 사형을 면하는 방법은 두가지인데, 목숨 값으로 50만전을 내는 방안(속전)과 궁형을 받는 것이었다.

당시 50만전은 병력 5천을 1년동안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거금이었다고 한다.

사마천은 궁형을 선택했고, 사람들에게 치욕을 당했다고 한다.

사마천이 치욕을 견딘 이유는 "사기" 를 완성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56세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사기를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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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은 궁형을 받을 당시 "이것이 나의 죄인가! 이것이 나의 죄인가! 내 몸이 훼손되어 쓸모가 없어졌구나!"라고 절규했다고 한다.

여름에는 냄새 때문에 가족들도 멀리했다고 하며(거세 초반에는 소변컨트롤이 어려워 오줌이 찔끔찔끔 샌다고 함.)

또한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보임안서)에는 '하루에도 장이 아홉 번 뒤틀린다' 며 육체적인 고통을 호소했다고 하며, '죽고만 싶다'고도 얘기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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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리(문제가 된 총대장)는 한 무제 말년에 후사문제에 휘말리면서 흉노와 싸우라고 준 군사들을 끌고 흉노로 망명해버렸다. 그리고 그곳에서 떵떵거리며 산다.

무제는 화가 나 장안에 남아 있던 그 일족을 모두 몰살한다.

그리고 한무제는 당시 사마천을 비방하거나 처벌하라고 했던 사람들을 싹 다 죽인 후 사마천을 불러 "남자가 그까짓거 뭐 대수냐, 너무 절망하지 말고 당당하게 어깨 펴고 다녀라 하하" 라며 호탕하게 웃으며 위로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그를 다시 불러들여 재상의 대우를 해줬다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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