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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리] 사냥꾼 두 사람이 토끼 세 마리를 잡았다면 - 법륜 스님의 행복 (개인적으로는 과욕은 버리고 사회는 과욕을 못 부리게 규제해야 한다)

by 돼지왕 왕돼지 2020.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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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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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혼자 살지 않고 여럿이 모여 살게 된 건 그 편이 좀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혼자서 사냥할 때는 종일 토끼 한 마리밖에 못 잡는데, 둘이 힘을 모으면 토끼 세 마리도 잡을 수 있으니 협력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협력하는 것이 늘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냥을 할 때는 여럿이 함께하는 게 이익이지만 막상 사냥감을 나누려고 하면 분배 갈등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익을 나눠 가져야 할 사람이 많아지면 갈등이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보통은 여럿이 모여 협력할 때 더 큰 이익이 돌아오지만 더러 혼자 일할 때보다 손해를 보는 사람도 생겨날 수 있다.
손해보는 사람이 늘어나면 분노와 불만이 쌓이면서 그 사회는 병들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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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혼자서 수렵 채취할 때 경제는 생산만을 가리키는 게 맞다.
분배 개념이 필요 없다..
하지만 둘 이상이 협력을 할 때는 생산만큼이나 분배가 아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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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 두 사람이 세 마리의 토끼를 잡았다면, 분배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본적으로 너 한 마리, 나 한마리는 먼저 가지고 증산된 한 마리를 갖고 어떻게 나눌 것이냐의 문제다.
내가 가질 수 있는 최소는 한 마리이고, 최대는 세 마리가 아니라 두 마리라는 것이다.
이 때 '내가 한 마리를 갖겠다' 는 것은 욕심이 아니다.
이것은 기본 권리에 속한다.
내가 한 마리 이상 두 마리 이하를 갖겠다는 것은 욕망이다.
내가 두 마리 이상 세 마리를 갖겠다는 것은 과욕이다.
과욕을 부리게 되면 상대에게도 손실이지만 나에게도 조만간 손실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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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는 과욕을 버려야 하고, 사회제도적으로는 과욕을 못 부리게 규제를 해야 한다
특히 한 마리를 갖겠다고 하는 기본적 욕구는 제도적으로 보장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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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욕을 규제하지 않거나 기본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만 손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나에게도 손해가 된다.
내가 세 마리를 다 갖고 싶어하면 상대편은 한 마리도 못 갖게 된다.
그러면 상대는 손해를 봤기 때문에 다음부터는 협력을 안 하게 된다.
즉 내가 세 마리를 갖는 것은 오늘은 이익인데 내일의 이익은 유지될 수가 없다.
협력은 오늘 하루로써 끝나버리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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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분배를 할 때는 한 마리와 두 마리 사이에서 어떻게 적절하게 나눌 것이냐를 놓고 경쟁해야 한다.
이상적인 것은 1.5마리를 갖는 것이지만 현실적인 변수가 있다.
가령 오늘 토끼를 잡는데 상대는 게을렀고, 나는 열심히 일했는데 똑같이 나눈다면 기분이 나쁘거나 좀 섭섭해서 불평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이 분배는 1.2대 1.8이 될 수도 있고, 1.7대 1.3이 될 수도 있다.
이상적인 것은 1.5이지만 현실이 반드시 1.5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1.5의 분배를 위해 노력해나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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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 사회가 혼란스러운 것은 약자의 기본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으면서 강자의 과욕마저도 규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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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분배의 정의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모색해야 할 시기에 공교롭게도 신자유주의에 휩쓸리고 말았다.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만이 살 길이라고 여기고 무한경쟁에 돌입한 거다.
신자유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경쟁을 통한 승자독식이다.
똑똑한 사람 한 명이 10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다는 인식이 대표적이다.
이런 식으로 경쟁을 부추기면 어느 정도 생산성을 높일 수는 있겠지만 분명히 한계가 있다.
더군다나 소득 격차가 심해지면 사람들은 아예 일할 의욕을 잃어버린다.
사회 전체적으로 동력이 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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