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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놀이터/인도 역사(이야기)

[인도 이야기] 민족 반영, 세포이 항쟁

by 돼지왕왕돼지 2020. 2. 24.

세포이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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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이(Sepoy, 동인도 회사가 운영하던 영국군대의 인도인 용병).
유럽관료들을 살해 후 미루트(Meerut)에서부터 흥분된 일반시민까지 합세하여 델리로 돌격.
붉은 성으로 들어가 명목상 무굴제국의 왕인 바히두르샤 2세(Ba hadur Shah II)에게 자신들의 지도자가 되어줄 것을 요구.

힘 없이 영국정부의 꼭두각시 행세를 하던 그는 결국 지도자가 되었음. 세포이들은 영국의 정치관료들을 살해하고 그들의 사무실과 집무실들을 모두 파괴하며, 델리에서 영향력을 행사.
1857년의 대폭동(The revolt of 1857) 또는 세포이 항쟁(Sepoy Mutiny)라고 불리는 이것은 인도 민족항쟁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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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이 항쟁은 인도인들을 자극해 남부와 동부 일부를 제외한 전국으로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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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이 항쟁은 복합적 요인이 계기가 됨.
정치적으로는 동인도 회사로부터 시작한 영국의 영향력이 시간이 지날수록 인도전역으로 퍼져나가며 대부분의 힌두 왕족들을 좌지우지하게 되었다는 것.
아우랑제브 이후 무굴의 왕들은 그들의 심부름꿈이나 다름없는 명목상 왕으로 전락.

영국인들은 고위 관료직 인도인들을 해고, 정치 사회적 기능을 독차지.
인도인들을 미개인으로 간주해 심한 혐오감을 표하며 모욕감을 줌.

힌두의 전통적 관습인 사티와 조혼을 페지하고 사회적 풍습이나 법마저 바꾸며, 힌두사회와 문화에 개입해 인도인들을 자극.

경제적으로는 인도의 재산과 부를 영국으로 반출하고 인도인들의 땅을 교묘하게 빼앗음.

세포이들은 영국인들에 비해 아주 낮은 급여. 모욕도 감수하며 전장에서는 제일 앞에 서서 적군의 총에 먼저 희생되는 방패.

종교적으로는 많은 선교사들을 보내 인도인들을 개종시키려 하고,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에겐 경제적 혜택과 정부의 주요 관직을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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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이에게 지급된 탄약통 기름이 결정적 원인.
그 기름은 힌두와 이슬람계로 구성된 세포이들 사이에서 돼지기름과 소기름이라는 서로 다른 주장을 하게 했다.
힌두에게는 소가 그 무엇보다 신성시되는 동물이고, 이슬람에게 돼지는 그 무엇보다 더러워 터부시되는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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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이 항쟁은 현대식으로 무장한 영국인들에 의해 실패. 영국의 직접적인 인도통치가 시작되는 계기가 됨.

실패 원인은 운동을 이끌어갈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의 부재와 남인도와 동부 지역을 제외한 중북부 지역에서만 운동이 한정되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음.
또한 지방 군주들의 영국정부에 대한 협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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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이 항쟁을 끝으로 명목상 이어진 무굴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짐. 동인도 회사로부터 시작된 정치, 사회적 문제와 무자비한 경제적 수탈이 폭로되면서, 영국정부는 동인도 회사를 폐지하고 직접 인도 통치.
그러나 통치 내용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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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이 항쟁(1857년)은, 영국의 인도지배의 시발점이었던 1757년 플라시 전투 이후, 영국 통치 100주년을 맞은 인도인들의 분노와 복수심이 폭발한 사건이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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