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이야기) 놀이터/인도 역사(이야기)

[인도 이야기] 인도 사람들은 모두 터번을 쓰고 다닌다?

by 돼지왕 왕돼지 2020. 2. 29.
반응형

-

인도에서 터번을 두르고 다니는 시크교도는 외래교인 기독교에 비해서도 그 수가 적은 2,000만명 내외로 전체 인구의 2% 정도밖에 안된다.


-
시크교는 무굴제국이 건설되기 몇 해 전인 16세기 초반 박애(평등을 기본으로 하는 인간애)를 기본으로 힌두교의 박티(Bhakti)정신과 이슬람교를 부분적으로 수용해 구루 나나크(Guru Nanak)가 창설한 종교로 인도 북부 펀잡 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
나나크는 남녀평등을 주장하며 여성차별 타파를 주장했고, 힌두교의 최대 병폐인 카스트제도를 부정했다. 시크교뿐만 아니라 힌두교나 이슬람교에서도 위대한 성자로 남아 있다.


-
창시자 구루 나나크부터 마지막 구루인 고빈드 싱(Govind Singh)까지 10대 정신적 교주가 있었으며, 마지막 교주인 고빈드 싱에 의해 현재의 시크교가 정비되었을 만큼 시크교에 비친 영향은 절대적이다.


-
나나크는 막강한 군대를 정비해 다른 종교에 대항하고 스스로 자립을 위해 노력했다.
5K(Kesh(장발), Kangha(머리빗), Kachh(짧은 바지), Kara(쇠 팔찌), Kirpan(칼))라고 불리는 계율을 정해 신자들이 따르도록 했다.


-
시크교도의 대부분이 싱(Singh)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사자의 뜻을 지닌 의미에서 고빈드 싱에 의해 시크교 남자들에게 붙여졌다고 한다.


-
시크교들의 용맹스러움은 영국 지배 시절부터 인정받아 군대에서 눈에 띄는 역할을 했다. 인도군대에서도 많은 장군들과 군인들이 시크교 신자다.


-
역사적으로 시크교는 자립적인 그들만의 국가를 세우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으나 번번히 실패로 돌아갔다. 19세기 중반 시크전쟁을 통해 그들의 독립과 왕국건설의 계획이 영국군에 의해 좌절되었다.
1984년 자신들의 거점인 암리차르의 황금사원을 점령하고 독립을 요구했으나 이번엔 인도 정부에 의해 저지당했다.


-
과격 시크교도 경호원이 인도의 수상 인디라 간디를 암살한 사건으로 분노한 시민들이 시크교도들을 마구잡이로 학살하여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다. 터번을 쓰지 않고 머리를 기르지 않는 시크교도들을 만날 수 있는 이유도 그 당시 위협을 느껴 머리를 자른 시크교인이 상당수에 이르기 때문.


-
펀자브주 암리차르(Amritsar)에 위치한 황금사원(Golden Temple)은 시크교의 메카로 그들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하고 있으며, 인도 서북부 지방의 상징이자 관광지로 알려져 있다.

2008년 당시 인도의 국가원수인 맘모한 싱(Manmohan Singh)수상도 시크교도였고, 시크교의 입지는 날로 성장하고 있는 추세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