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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놀이터/베트남(Vietnam)

[베트남 후에] 후에성 #2 -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응우옌 왕조의 황성

by 돼지왕 왕돼지 2021. 5.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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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에성 #1 에 이은 2편이다.

 

 

'태평루' 라는 곳.

손님 접대용 건물이거나, 왕비가 사용했을 것이라 추정되는 곳으로, 다른 곳과 건축양식과 꾸밈 방식이 달라보인다.

 

 

처마부분을 푸른색과 은색이 많이 나도록 했다.

 

 

 

 

 

 

 

은근은근 보이는 멋진 정원들.

 

 

우리나라의 왕성 처마에는 어처구니가 있었는데,

이곳에는 용과 대신이 있다.

 

 

벽과 돌 창살

 

 

 

거북이 모양 둔덕

 

 

옥쇄 모양 조각상.

 

 

자금성을 다른 각도에서

 

 

 

이제 궁의 서쪽으로 이동한다.

 

 

 

황제의 어머니가 탔던 가마.

 

 

꿍지엔토(Cung Dien Tho, 연수궁) 내부.

이곳은 자롱 황제가 그의 어머니를 위해 건설한 궁전이다.

 

 

 

황제의 어머니가 생활하는 공간이라 정자와 연못, 수족관도 만들어놓았다.

 

 

황제의 어머니께서 연을 좋아하셨나 보다.

 

 

 

티엔무 사원 그림.

 

 

파괴되지 않았을 때의 후에궁의 모습을 미니어처로.

지금은 황량한 자금성 부분이 건물들로 가득차 있다.

 

 

후에성에 있는 문들은 그 나름대로의 멋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꿍쯔엉산 (Cung Truong Sanh, 장생궁) 의 정원으로,

장생궁은 황제의 어머니를 위한 또 다른 궁전이다.

주거 목적보다는 여가 시간 활용을 위해 건설했으며, 초승달 모양의 인공 호수와 화원을 만들어 공원처럼 꾸몄다.

 

 

 

후대에는 궁전을 증축하면서 왕비들의 침전으로 사용했다.

 

 

 

 

 

 

 

 

 

 

미에우몬(Mieu Mon, 묘문).

종묘의 정문이다.

 

 

문의 그림부분은 이렇게 양각의 형태로 되어 있었다.

 

 

처마의 연결부의 독특한 입 벌린 짐승 모양이 인상적이다.

 

 

테또미에우(The To Mieu, 세조묘)

테또(세조)는 자롱 황제의 묘호이다.

본래 자롱 황제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었으나, 현재는 역대 황제들의 위패도 함께 모시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종묘라고 보면 된다.

10명의 황제 위패밖에 없는 이유는 프랑스 통치에 반기를 들다가 어린 나이에 폐위된 황제들이 많기 때문이다.

8, 10, 11 대 황제의 위패는 프랑스 군대가 완전히 철수한 1959년에 들어와서 종묘에 모실 수 있다고 하며,

마지막 황제인 바오다이 황제는 위패를 모시지 못했다. (그의 무덤은 프랑스 파리에 있다.)

 

 

(세 개의 받침대와 귀가 두 개 달린 쇠솥) 9개.

민망 황제 때인 1836년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으며, 응우옌 왕조의 1~9대 황제들의 통치권을 상징한다고 한다.

무게는 2톤이 넘으며, 정마다 크기가 조금씩 다르다.

 

 

가장 큰 것이 가운데 있는 것으로 응우옌 왕조 1대 황제인 자롱 황제를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히엔럼깍(Hien Lam Cac현임각).

3층짜리 누각으로, 왕실 사원이라고 보면 된다.

누각의 높이는 13m 로 후대의 황제들이 왕궁 내부에 더 높은 건물의 신축을 금지하면서 왕궁에서 가장 높은 건물로 남아있다고 한다.

 

 

 

 

이렇게 후에성 투어를 마쳤다.

여유있게 둘러보면 2시간~2시간 30분정도 소요된다.

 

 

입구는 성의 남쪽에 있었으나, 출구는 성의 동쪽에 있어 또 한없이 걷는다.

 

 

성의 출구.

어슴푸레한 하늘과, 해자, 연꽃들, 그리고 모기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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